성 요한 보스코

영성

우리 수도회는 살레시오회 선교사들의 창안으로 태어났고, 살레시오적 환경에서 발전했으며, 은사적 자격으로 살레시오 가족에 소속되었다.
우리의 삶의 계획으로 우리는 살레시오 가족에게 독창적인 기여를 하고, 가족 정신으로 공통의 사명 안에서 협력한다. 또한, 가능한 한 살레시오 수도회의 영적 도움을 받는다.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수도회의 총원장을 “돈 보스코의 후계자요, 살레시오 가족의 아버지이자 일치의 중심”으로 인정한다.(회헌 5조: 살레시오 가족 안에서의 우리 수도회)


 성령께서는 돈 보스코의 마음을 하느님과 형제자매들, 특히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원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하심으로써, 그를 영적이며 사도적인 가족의 창립자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젊은이의 스승이요 아버지가 되게 하셨다. 돈 보스코는 “나에게 영혼을 주고 나머지는 다 가져가라”라는 모토를 선택하면서 하느님과 젊은이들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아홉 살 때 꿈을 통해 보았던 사명을 실현하고자 많은 희생을 치르며 노력하였다.
 그 당시 젊은이들과 서민들의 필요에 응답하기 위해 돈 보스코는 1841년에 거대한 청소년 가족으로 이해되는 오라토리오를 만들고,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회를 설립하였으며, 이 회가 교황을 일치의 중심으로 여기는 교회의 살아 있는 부분이 되기를 원했다.
 1864년에 마리아 도메니카 마자렐로와의 만남은 교육 영역을 소녀들에게까지 확장하도록 돈 보스코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를 위해 1872년에 돈 보스코는 그의 정신을 따르지만 모르네세 성녀에 의해 여성에게 소개되는 교육사업에 헌신할 ‘도움이신 마리아의 딸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또한 돈 보스코는 젊은이들의 선익을 위해 그리고 서민들 가운데에서 신앙을 옹호하고 강화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헌신하는 많은 남녀 가톨릭 신자들과 관계를 맺고, 이들과 함께 하나 되어 활동할 때의 큰 힘과 효능을 체험하였다. 이렇게 해서 살레시오 협력자 연합회(오늘날 ‘살레시오 협력자회’)가 탄생했으며, 이 회는 같은 발독코의 정신으로 고무되어 자신들의 가정, 속해 있는 그리스도 공동체, 사회 안에서, 청소년·서민 선교라는 공통의 사도직을 완수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성체 신심과 도움이신 마리아에 대한 경배를 증진하기 위해 도움이신 마리아 신심회(오늘날의 ‘도움이신 마리아회’)가 돈 보스코에 의해 발족되었으며 돈 보스코를 중심으로 초기 졸업생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그분에 의해 창립된 네 개의 첫 단체들 외에, 20세기를 지내고 새 천년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다른 단체가 더해졌다. 그분의 몇몇 영적 아들들은 창립자로부터 영감과 가르침을 이어받아 여러 대륙과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새로운 단체들을 탄생시켰다. 각기 독특한 성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돈 보스코를 공통의 ‘아버지’로 인정하며, 스스로 돈 보스코의 정신으로 활력을 얻고 있음을 느낀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특성에 따라 돈 보스코의 정신을 생활 안에서 실천하며, 젊은이들·가난한 사람들·고통 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섬긴다는 공동 사명을 지니고 있음을 느낀다.
 돈 보스코는 자신의 영적 태도와 활동으로 드러나는 행동들을 여러 성인들에게서 길어 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에게서는 침착함을, 성 필립보 네리에게서는 기쁨과 음악과 축제감각을,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에게서는 호감을 주는 상냥함과 낙관주의와 그리스도교적 인본주의를, 성 빈첸시오 드 폴에게서는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자비로운 사랑을 본받았는데 이 때문에 돈 보스코를 19세기의 성 빈첸시오라고 부른 이들도 있었다.
 돈 보스코는 이러한 덕스러운 태도와 행동방식의 총체를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초창기 아들들과 함께 살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그들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살레시오 정신이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회원들이 수녀회의 초창기 정신에 충실하기 위해 성 빈첸시오 정신에 결합된 돈 보스코의 정신을 알고 살아가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정신은 자신을 내주고 용서하는 자비로운 사랑, 즉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중심으로 한 덕스러운 내적 태도와 활동에서의 행동방식 혹은 행위방식의 총체이다. 이 정신을 우리는 성 빈첸시오 드 폴과 성 요한 보스코에게서 길어 올린 방식으로 실천한다.
 우리 수도회는 그의 영적 아들들인 살레시오 회원들의 창안으로 생겨났고 돈 보스코가 창설한 살레시오 가족의 삶의 자리에서 성장하였다. 은사적 자격으로 살레시오 가족에 소속하는 인정을 받았고 돈 보스코의 교육적이고 사도적인 계획과 그의 예방교육 및 그의 정신을 공유하면서 우리의 은사적·영적 삶의 계획의 고유한 특징들로 그것들을 풍요롭게 한다. 살레시오 회원들의 영적 도움을 받으며 돈 보스코를 공경하고 우리의 이 특별한 돈 보스코적 정체성에 충실할 임무에서 성인의 동반을 받고자 그에게 전구를 청한다.
 미야자키의 구호원이 이미 원활하게 시작되었을 시기인 1935년에 총원장에게 편지를 쓰면서 돈 치마티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우리 돈 보스코께서 선교사들에게 남긴 말이 늘 저희를 인도했습니다. ‘병자들과 어린이들, 노인들과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돌보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의 축복과 사람들의 호의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아버지, 돈 보스코의 이 가르침 말씀은 오늘 위로가 되는 이 사업 안에서 충만히 실현되었음을 봅니다.”

 여기에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의 은사적 사명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병자들과 어린이들, 노인들과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돌보는 것” 안에서 드러나고 실현되는, 행동하는 그리스도교적 애덕이다.
우리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과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자비로운 사랑을 실행하기 위해, 사도적이고 자매적인 공동체 안에서 순종하시고 가난하시고 정결하신 주님의 제자들로서 주님과 나누는 기도의 대화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우리 자신을 바치는 관대한 봉헌으로 활성화되고 살레시오 정신에서 활력을 얻는 성심의 사랑의 사도들이다.


마리아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돈 보스코는 마리아를 스승이요 어머니로 생각하였다. 이는 그가 아홉 살 때 꿈에서 존귀한 분이 그에게 그렇게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지역교회의 여정에 진입하며 그가 처음 교육 활동을 시작하였을 때, 성인은 위로의 성모님께 자신의 사업을 맡겼다. ‘가난하고 위험에 처한’ 소년들은 마리아의 보호와 위로가 필요했다.
그 후에는 마리아에 대한 보편교회의 교의와 친교 속에 살면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마치 사랑의 힘을 지닌 교육자요 아이들의 인격적이고 그리스도인적 성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분으로 소개하면서 그들에게 제안하였다.
마지막으로, “마리아께서 다하셨다.”라는 당신의 사업을 창립하고 발전시키는 경험을 통해, 심지어는 기이한 섭리의 개입을 체험하면서, 새로 탄생하는 수도회를 그리스도인의 도움이라는 명칭을 지닌 동정녀께 봉헌하였다.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요 그리스도인의 도움일 뿐 아니라, 온 인류의 어머니로 여겨지기 때문에, 살레시오 가족의 여러 단체에 소속된 다른 종교를 믿는 남녀 동역자들도 마리아께 진정한 경배를 드린다.


행하고 가르치라
‘먼저 행동하시고 후에 가르치기 시작하셨’(사도 1,1 참조)던 나자렛 예수님의 활동방침은 사실 돈 보스코 자신이 일생 동안 따랐던 것이고 우리 수도회 초창기에 살레시오 회원들이 반복하여 권고했던 사항이다. 이 방법적 전략은 돈 가볼리의 ‘사랑의 전언’에서도 제안되었다.


성체 안에 계시는, 이웃 안에서 알아보고 섬김을 받으시는 예수님과의 단순하고 진심어린 만남
돈 보스코는 성체적 신심과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의 예수님을 자주 방문하는 신심을 살았고 모든 수단을 통해 이를 장려하였다. 성체성사 안에 계시는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의 생각과 애정을 모두 끌어들여, 우리의 모든 활동의 원동력으로 변화시킨다.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 일상의 삶은 단순한 마음으로 그분께 기도하고 쉼 없이 그분과 대화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삶의 동반자이신 예수님과의 이러한 결합으로 우리에게 형제자매들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섬기는 임무를 부여한다.


역동적인 사도적 사랑
역동적인 사도적 사랑은 돈 보스코 정신의 핵심과, 살레시오 삶의 진수 그리고 살레시오 가족 구성원의 사도적 헌신의 힘을 대변한다.
사랑은 하느님의 이름이며, 인간 마음의 힘을 가리킬 뿐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오는 자비에 참여하는 실천이다. 사도적이란, 우리가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려고 예수님을 보내시는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에 동참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역동적이란, 열정과 창의성으로 사람들의 기대에 구체적으로 응답하기 위한 보다 필수적이고 효과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능력을 표현한다. 돈 보스코에게 있어 이 모든 것은 오라토리오 마음이라 불린다. 열정과 열의, 가능한 한 모든 자원의 활용, 새로운 활동에 대한 모색, 시련에 맞서는 능력, 패배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 배양되고 확산된 낙관주의 등을 말한다.
유아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사도적인 역동적 사랑이 복음적으로 부드럽게 표현되고, 여러 유형의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돌보는 데 헌신할 때는 자비롭고 섭리적인 사랑으로 표현되며, 병자와 노인들 사이에서는 측은지심의 애덕으로 표현된다.


활동 안에서의 관상, 우리의 신비학
우리의 신비학은 세 분의 성인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와 성 빈첸시오 드 폴 그리고 성 요한 보스코이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신애론’에서 하느님의 커다란,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신비와의 깊은 영적 친교의 세 가지 형태를 구별한다.
이는 지적 황홀경, 애정적 황홀경 그리고 활동과 삶의 황홀경으로 구별된다. 그에게 지적 황홀경과 애정적 황홀경은 활동의 황홀경을 향해 있다. 활동의 황홀경은 앞의 두 가지의 ‘화관’에 해당되고, 이것 없이 앞의 두 가지는 불완전하며 심지어 의심스럽고 거짓일 수 있다. 그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역동적 사랑(까리따스)에서 활력을 얻어 살며, 그 역동적 사랑을 통해 효과적 활동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 신비학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분이 성 빈첸시오 드 폴이다. 이는 또한 돈 보스코의 신비학으로 그는 “나에게 영혼을 달라”라는 공식 안에 이를 농축하여 담았고, 세 번째 후계자인 복자 필립보 리날디는 이를 ‘활동하는 관상’이라 정의했다. ‘활동하는 관상가’, 이것이 돈 보스코의 삶을 특징지었던 관상의 형태이다.
돈 보스코에게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산다는 것”은 내적으로 하느님에게서 활력을 얻어, 젊은이들에 대한 그의 열정에서 드러나듯이 활동적 사랑에 온전히 젖어 다양한 모든 활동을 행하고 그분과 깊이 일치해 있음을 의미한다. 살레시오 가족은 돈 보스코가 철저히 살았고, 그의 모든 영적 제자들에게 고귀한 유산으로 물려준 만큼 이러한 방법들을 받아들인다.

가족 정신
돈 보스코가 자신의 영적 자녀들에게 남겨준 특징적인 가족 정신은 최초의 살레시오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에게 전해졌으며, 우리 초창기 자매들의 삶을 특징지어 주었다. 살레시오적 가족 정신은 공동체 안에 사는 사람들 각자에게 “자기 집”처럼 느끼게 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방인도 아니고, 그 공동체에서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자기 가족 안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끼게 한다. 그것은 진지하게 존중받고, 호감으로 환대받으며, 진실한 관심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애정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호적인 “친밀한 신뢰”, 일상적인 “용서”, 상호적인 “존중”, 매력적인 “온유한 친절”, 전염성 있는 “기쁨”으로 말미암아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것이 되게 한다.

교황에 대한 충실과 교회 안에서 친교와 사명
교황에 대한 신심은 돈 보스코가 장려하고 자신의 사도적 가족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남겨 준 신심이다. 교황에 대한 충실은 우리가 말로 선포하고 옹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우리에게 교황의 가르침을 적절한 방식으로 알고 확신에 찬 태도로 따를 것을 요구한다.
돈 보스코로부터 물려받은 영성은 탁월하게 교회적인 것이다. 이러한 영성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라는 형제적 관계와 활발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건설하면서 교회의 친교를 표현하고 전체 교회를 부유하게 하는 영성이다.


섭리에 대한 신뢰, 낙관주의와 기쁨
우리 수도회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태어났다. 우리 초창기 자매들은 하느님의 섭리가 원하시는 바에 온전히 의탁함으로써 낙관주의와 기쁨에 차서 영웅적인 삶을 살았다.
“사랑”이신 하느님,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기쁨의 하느님”에 대한 불굴의 신뢰를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는 어떠한 난관에 부닥쳐도 낙담하지 않는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인본주의에서 영감을 얻어, 사람들의 인간적 한계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연적 영적 자원에 신뢰한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평온함과 낙관주의, 그리스도교적 기쁨의 분위기를 촉진하고,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라는 성 바오로의 간곡한 권고를 따른다.(회헌 16조)


살레시오 가족에 속한 우리는 자신 안에서 기쁨이 솟아나게 하는, 그리고 이를 다른 이에게 전하는 몇 가지 태도들을 배양한다. 그것은 ‘선의 승리에 대한 확신’ ‘인간적 가치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일상의 기쁨에 대한 교육’이다.


일과 절제
일은 애덕을 완성하는 요소이며 모든 수녀를 위한 성화의 수단이요, 하느님과 이웃에게 봉사하기 위한 도구이다. 일은 우리로 하여금 활동하도록, 우리의 능력을 활용하도록 독려하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도록 해 주며 그들에게 봉사하도록 해 준다.
우리가 하는 일의 질은 자발성, 근면함, 관대함, 진취성, 꾸준한 쇄신, 그리고 올바른 의향 및 “언제 어디에서나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서” 하느님과 이루는 일치이다. 이것이 우리의 신비학이기 때문이다.
또한 절제는 애덕의 실천을 돕는다. 절제는 우리의 자아를 지배하도록 이끌어 주고, 겸손, 금욕, 온화, 인자함, 검소함과 자제, 절약과 소박함 등 여러 면에서 조절하게 하는 덕의 ‘중추’가 된다. 그와 함께 절제는 또 물건과 지나친 욕구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도와 주고 우리 자신의 주인이 되게 해 주는 덕스러운 태도이다.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는 생활과 사도적 활동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종류의 수고와 어려움이라도 인내와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고, 삶 안에서 하느님과 깊이 일치하도록 노력한다. 돈 보스코가 권장한 금욕과 절제는 여러 측면이 있다.
하느님 앞의 종일뿐임을 느끼는 겸손의 금욕, 감각과 마음을 통제하고, 안락 추구 때문에 관대함이 고갈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자신에 대해 주인이 되는 극기의 금욕, 힘든 현실에 직면했을 때 굳은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의 금욕, 현안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보다 가까이 이끌 때 자아 포기의 금욕을 들 수 있다.
“일과 절제는 수도회를 발전케 하며, 편의와 안락함의 추구는 수도회의 죽음을 가져옵니다.” 하신 돈 보스코의 말씀처럼, 우리 전통에서 “일과 절제”는 서로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며, 우리 삶에서도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인간 삶의 현실 자체가 우리에게 한편으로는 헌신과 열정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포기와 극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진취성과 유연성
진취성과 유연성은 우리 수도회 초창기에 수녀들의 행동양식을 특징지어 주었고, 수도회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진취성과 유연성은 우리 초창기에 존재했고 우리의 사도적 은사에 상응하는 영적 태도와 활동의 행동방식이며 성 빈첸시오 드 폴과 돈 보스코의 정신에 속하는 덕이다. 진취성의 정신은 또한 살레시오 정신의 특징적 요소이며 ‘살레시오 가족 사명헌장’은 이를 살레시오 가족을 구성하는 여러 단체의 고유한 덕으로 제시한다.
‘긴급한 순간이나 여러 상황’에 구체적 방식으로 응답하면서, 또한 ‘창의성과 분별로 이러한 필요들에 응답’해 나간다. ‘분별’은 우리에게, 분명히 지나치고 위험한 어떤 새로운 일을 피하고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받아들일 수 없는 개인주의적 정신이나 비난할만한 형태의 독립성에 양보하지 않기 위해 주의하며 깨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보장하려면, 우리의 일들을 정기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이고 진지한 방식으로, 개인적·공동체적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